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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André Malraux / 김붕구 역

     스물두 살 때부터 인도차이나의 정글 속을 헤매며 인간의 피치 못할 조건을 탐구해온 앙드레 말로. 그가 서른 한 살에 쓴 책이다. 그 후 작가는 스페인 내란과 레지스땅스에 뛰어들면서 30대와 40대를 보냈고, 75세에 교외의 한 병원 침대 위에서 만성폐출혈로 사망할 때까지 온통 '삶'에 대한 치열한 물음으로 일관한 생을 살았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역사와 실존 사이에서, 우정과 애정 사이에서,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감각과 의지 사이에서, 밤과 낮 사이에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과 인간 아닌 것 사이에서 인간이 인간이 되는 최소 조건은 무엇인가? 비록 그의 몸은 오래된 묘지에 누웠으나 행동으로 직접 보여준 그의 삶과 정신이 고스란히 살아숨쉬고 있는 책이다.

 "저것들 봐라. 저 잉어들과 다름없지. 그는 줄곳 술을 마시더라만 차라리 아편을 마시도록 되먹은 위인이야. 사람이란 흔히 나쁜 버릇을 선택하는 것 조차도 제대로 못 한단 말이다. 많은 사람이 자기를 건져줄 나쁜 버릇도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거지. 하지만 그 사람의 생활에 대해서는 넌 별로 흥미가 없을게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오늘 밤 기사를 생각하지 않았다면 기요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 생각했을 것이다. 얼마 전 카바레 '블랙 캣'에 있었을 때처럼 차츰 몸이 훈훈해져 왔다. 그리고 다시 그 레코드 일이 자꾸 머리에 떠오르면서, 마치 피로가 풀릴 때 다리께로 노곤하게 번져드는 열을 느끼듯이 그 생각이 피곤한 머리에 엄습해 왔다. 그는 레코드를 들으면서 느꼈던 놀라움을 아버지에게 이야기했다. 비밀 지령 이야기는 입밖에 내지 않고 그저 영국인 가게에서 녹음한 것처럼 이야기했다.
 지조르는 왼손으로 모가 난 턱을 어루만지며 아들의 이야기에 귀를 귀울이고 있었가. 손가락이 마르긴 했지만 퍽 매끈하고 고운 손이었다. 그는 고래를 숙였다. 이마가 꽤 넓게 벗어진 편이었지만 고개를 숙이자 머리카락이 눈 위에까지 흘러내렸다. 그는 머리를 들어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그러나 눈동자는 여전히 흐릿했다.
 "나도 전에 무심코 거울을 들여다보고 통 내 얼굴같이 보이지 않았던 적이 있었지......."
 그의 엄지손가락은 마치 추억의 가루를 털어내기라도 하려는 듯이 오른손 손가락들을 조용히 매만지고 있었다. 그는 이들이 앞에 있다는 것도 잊어버린 듯 자기 생각을 쫓으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건 틀림없이 방법의 문제야. 우린 딴 사람의 목소리는 귀로 듣거든."
 "그럼 자기 목소리는요?"
 "목구멍으로 듣는 거지. 왜냐하면 귀를 막아도 자기 목소리는 들리거든. 아편 역시 귀로 들을 수 없는 하나의 세계지......."

적절한 가격에 적절한 분량일거라는 기대에 구매했다가
두께에 눌려 잠시 귀퉁이에 모셔두었던 책.
요즘 틈틈히 들고다니며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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