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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니얼 J. 레비틴 저 / 장호연 역

     『뇌의 왈츠』은 ‘우리가 음악을 들을 때 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를 밝혀내 그동안 ‘감성과 미학의 영역’으로 분류되던 인간의 예술적 능력을 뇌과학으로 풀어내고 있는 책으로 2008년 아태물리연구센터가 선정한 올해의 과학도서이기도 하다. 저자는 인간의 가장 본능적인 행위 중 하나라고들 말하는 음악과 관련된 여러 인지 능력과 신경 과학을 설명해내며, 뇌의 구성방식과 역할을 넘어서 마인드의 작용과 교류의 방식을 연구하고 있다. 또한 아직까지 증명되지 않는 뇌손상에 관련된 여러 증상들과 음악에 관한 통념들을 벗겨내고 있다.일반적인 ...

  표준적인 피아노에는 88개의 건반이 있다. 아주 드물게는 아래쪽에 몇개의 건반이 더 있는 피아노도 있고, 전자피아노나 오르간, 신시사이저는 12개나 24개의 건반만 있을 수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경우다. 표준적인 피아노에서 가장 낮은 음은 27.5Hz의 주파수로 진동한다. 흥미롭게도 이것은 시각 지각에서 중요한 식역을 이루는 운동 속도와 같다. 고정된 사진이나 슬라이드를 이 정도 속도로 연속적으로 제시하면 영상이 움직이는 것 같은 착시 현상이 일어난다. '모션 픽쳐'의 원리는 인간의 시각체계가 움직임을 처리하는 속도보다 빠르게(1초에 48회) 고정 영상과 검은색 필름을 번갈아가며 보여주는 것이다. 이때 우리는 부드럽고 연속적인 동작을 보지만 실은 그렇게 보일 뿐 그런 것은 없다. 분자가 이런 속도로 진동하면 우리는 소리를 연속적인 음으로 지각한다. 어릴 때 자전거 바퀴살에 카드를 끼워놓고 페달을 돌리며 이와 비슷한 원리를 시험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페달을 천천히 돌리면 카드가 살에 걸려 탁탁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일정 속도 이상이 되면 탁탁거리는 소리가 윙윙대는 소리로 바뀐다. 실제로 흥얼거릴 수 있는 소리, 바로 음높이가 된 것이다.


  FM 합성 기술이 대중화되면서 꾸준히 로열티 수입을 얻게 된 차우닝은 그 돈으로 CCRMA를 설립해서 재능 있는 대학원생들과 정상급 교수들을 불러 모았다. CCRMA에 최초로 온 유명한 전자음악가와 음악심리학자로 존 R. 피어스(John R. Pierce)와 맥스 매튜스(Max Mathews)가 있다. 피어스는 뉴저지의 벨 연구소에서 연구 부소장으로 일하면서 트랜지스터를 만들고 특허출원한 엔지니어 팀을 지휘환 인물이었다. 새 제품에 트랜지스터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이 바로 그였다. 그는 또한 진행파 진공관을 발명한 장본인이자 최초의 통신위성 텔스타를 개발한 사람이었다. JJ. 커플링이라는 가명으로 과학소설을 쓰는 유명 작가이기도 하다. 피어스는 과학자들이 주도권을 쥐고 일할 수 있는, 그리고 창조력이 높은 평가를 받는 유례없는 분위기를 연구 개발실에 조성했다. 당시 벨 전화회사 / AT&T는 미국에서 전화 사업을 독점했고 많은 현금을 보유하고 있었다. 회사의 연구 개발실은 미국에서 가장 총명한 발명가, 엔지니어, 과학자들이 모인 일종의 놀이터였다. 피어스는 벨 연구소의 '모래상자'에서 직원들이 자신의 아이디어가 수익을 낼지, 상품화할 수 있을지 걱정하지 말고 마음껏 창조적 아이디어를 펼치도록 했다. 피어스는 진정한 혁신을 이루려면 사람들이 자신을 검열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펼치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아이디어 가운데 소수만이 상용화의 길에 오르고 제품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그보다 더 적겠지만, 바로 이런 제품들이 혁신적이고 훌륭하며 큰 이익을 창출해낼 가능성이 높다. 레이저, 디지털컴퓨터, 유닉스 운영체제 같은 다수의 혁신적 제품들은 바로 이런 환경에서 나왔다.


  음높이가 그랬듯이 음가도 간단한 정수 비율로 된 것이 가장 널리 사용되며, 이런 것이 신경적으로 더 처리하기 쉽다는 증거들이 많다. 하지만 에릭 클라크(Eric Clarke)가 주목했듯이, 실제 음악에는 간단한 정수 비율로 된 리듬이 거의 없다. 따라서 신경이 음악적 시간을 처리하는 동안 양자화 과정이 일어난다고 볼 수 있다. 대충 더하고 빼는 과정을 통해 2대1, 3대1, 4대1 같은 간단한 정수 비율 받아들인다는 얘기다. 이보다 훨씬 복잡한 비율을 사용하는 음악도 있다.


  폰 에렌펠스, 막스 베르트하이머(Max Wertheimer), 볼프강 쾰러(Wolfgang Köhler), 쿠르트 코프카(Kurt Koffka) 등의 게슈탈트 심리학자들은 구성의 문제, 즉 개별 요소들이 모여 전체를 이루는 문제에 관심을 보였다. 부분들의 합과는 질적으로 다른 대상, 따라서 부분의 관점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이 그들의 관심거리였다. '게슈탈트'라는 말은 영어에 들어오면서 통합된 전체 형태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며, 예술적 대상과 비예술적 대상 모두에 적용된다. 현수교를 일종의 게슈탈트로 볼 수 있다. 다리의 기능과 효용성은 케이블, 대들보, 볼트, 철재를 들여다본다고 해서 쉽게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들이 모여 '다리'라는 형태를 이룰 때 비로소 우리는 다리가 동일한 부품들로 만들어진 건설 현장의 기중기와 어떻게 다른지 이해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회화에서 요소들 사이의 관계는 최종 예술 작품에서 결정적이다. 얼굴을 그린 그림이 좋은 예가 된다. 만약 [모나리자]의 눈, 코, 입을 똑같이 그리더라도 캔버스 여기저기에 다르게 배치한다면 그것은 [모나리자]라고 할 수 없다.


  뇌가 갖는 연산 능력은 이렇게 엄청난 연결 가능성 덕분이며, 이는 뇌가 직렬 처리 기계가 아니라 병렬 처리 기계이기 떄문이다. 직렬 처리 기계는 어셈블리 라인과 같아서 각각의 정보가 심적 컨베이어벨트에 실려 전달되면 기계는 정보를 하나씩 실행한 뒤 다음 단계로 넘기고 새로운 정보를 받는다. 컴퓨터가 바로 이런 식으로 작동한다. 컴퓨터로부터 노래를 한 곡 다운로드받고 아이다호 주의 날씨를 알려주고 당신이 작업하고 있는 파일을 저장하라고 명령하면, 한 번에 한 가지씩 일을 처리한다. 그 과정이 너무 빨라서 동시에 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실은 그렇지 않다. 반면 뇌는 한 번에 여러 일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다. 중복해서 나란히 실행한다. 우리의 청각 체계는 소리를 이런식으로 처리한다.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알기 위해 음높이 파악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두 가지 작용을 전담하는 신경 회로들이 동시에 두 가지 대답을 찾으려고 시도한다. 하나의 신경 회로가 다른 신경 회로보다 먼저 일을 끝내면, 그 정보를 다른 뇌 부위에 전달해서 활용하기 시작한다. 별도의 처리 회로를 통해 얻어진 정보가 나중에 도착해서 지금 듣고 있는 음악의 해석에 영향을 미치면 뇌는 즉각 '마음을 바꿔' 상황 파악을 수정한다. 우리의 뇌는 수시로 자신의 의견을 업데이트한다. 특히 시각 자극과 청각 자극을 지각할 때 1초에 수백 회씩 업데이트가 이루어지는데, 우리는 미처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하지만 음악에서 가장 근복적인 착각은 구조와 형식의 감각이다. 음들의 연속에는 우리가 음악에서 얻는 풍부한 정서적 연상을 만들어내는 것이 없다. 음계나 화음, 화음 진행에는 본질적으로 우리에게 해결을 기대하게끔 만드는 것이 없다. 음악을 이해하는 우리의 능력은 경험 덕분이며, 우리가 새로운 음악을 듣고 이미 아는 음악을 들을 때마다 학습하고 재조정하는 신경 구조 덕분이다. 우리의 뇌는 우리 문화권의 언어를 말하는 법을 배우듯이 우리 문화권의 음악에 특유한 음악 문법을 배운다.

  노엄 촘스키(Noam Chomsky)는 모든 사람이 세계의 어떤 언어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본질적으로 타고나며, 구체적인 언어를 경험하면 복잡하게 얽힌 신경회로 네트워크가 모양을 갖추고 자라고 결국 가지치기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그가 현대 언어학과 심리학에 기여한 바다.


  신경심리학 문헌에 등장하는 가장 유명한 사례로 이니셜 S로만 알려진 러시아 환자가 있다. 그는 내과의사 A.R. 루리아의 환자로 기억과다증, 그러니까 기억상실증과 정반대 증세로 모든 것을 잊는 대신 모든 것을 기억하는 병을 앓았다. S는 동일인에 대한 서로 다른 의견들이 한 사람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어떤 사람이 웃는 것을 보면 그것은 하나의 의 얼굴이었다. 그 사람이 나중에 얼굴을 찌푸리면 그것은 다른 얼굴이었다. S는 한 사람이 갖는 여러 표현들과 다양한 시야각을 그 사람에 대한 하나의 일관된 표상으로 통합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여기에 더해 음악가들은 덩어리만들기(chunking)라는 방법을 사용하는데, 이는 체스 플레이어나 운동선수 같은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정보를 조직하는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정보를 조직하는 것을 말한다. 덩어리만들기는 정보 단위를 묶어 그룹을 만든 뒤 개별 부분들이 아니라 그룹 전체를 기억하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는 그렇게 의식적인 자각 없이 늘 이렇게 하는데 누군가의 장거리 전화번호를 기억해야 할 때가 대표적인 경우다. 뉴욕에 있는 사람의 전화번호를 기억하려 할 때 우리는 지역번호 세 자리를 개별적인 번호들로 기억하지 않고 하나의 단위로 묶어 기억한다. 마찬가지로 로스앤젤레스는 213, 애틀란타는 404 그리고 영국의 국가번호는 44 하는 식으로 한꺼번에 묶어 기억한다. 덩어리만들기가 중요한 이유는 우리의 뇌가 활발하게 따라가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한 장기 기억에는 사실상 한계가 없지만, 작업 중인 기억, 즉 현재 자각하고 있는 내용을 기억할 때는 명백한 한계를 보인다. 보통 아홉 조각의 정보까지 기억한다. 미국의 전화번호를 지역번호 하나에 일곱자리수를 더한 것으로 외우면 이런 한계를 벗어나지 않는다. 체스 플레이어도 덩어리만들기를 활용해, 게임 양상을 기억할 때 표준적인 패턴으로 배열된 말들을 하나로 묶어 기억한다.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자신의 연약함을 그렇게 드러내는 것은 아주 특이한 일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마음속의 모든 생각과 감정을 무심코 털어 놓지 못하게 방어하는 심적 기제를 갖는다. 누군가가 "어떻게 지내?"하고 물으면 그저 습관적으로 "잘 지내"하고 답한다. 집에서 있었던 말다툼으로 기분이 상해 있거나 가벼운 병을 앓고 있더라고 말이다. 나의 할아버지께서는 따분한 사람이란 "어떻게 지내?"하고 물었을 때 실제 상태를 대답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가까운 친구라고 해도 속이 더부룩하다거나 변비가 있다거나 자신감이 없다거나 하는 문제까지 털어놓지 않는다. 그런 우리들이 좋아하는 음악가에게는 연약함을 기꺼이 드러내 보이는 한 가지 이유는 음악가들도 종종 자신의 연약함을 우리에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물론 음악을 통해서다. 그들이 실제로도 그런지 예술을적으로 표현하는 것뿐인지는 지금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의심의 여지없이 지난 20년 동안 신경과학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언급되는 발견은 영장류 뇌에 존재하는 거울 뉴런의 발견이다. 자코모 리졸라티(Giacomo Rizzolatti), 레오나르도 포가시(Leonardo Fogassi), 비토리오 갈레세(Vittorio Gallese)는 손을 뻗거나 쥐는 원숭이의 동작을 담당하는 뇌 기제를 연구하고 있었다. 그들은 원숭이가 음식을 향해 손을 뻗을 때 원숭이 뇌 속 하나의 뉴런에서 신호가 나오는 것을 읽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포가시가 바나나를 향해 손을 뻗자 원숭이의 뉴런 - 앞선 동작과 관계가 있었던 바로 그 뉴런 - 이 발화하기 시작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원숭이는 움직이지 않았잖아?" 리졸리티는 그때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한다. "처음에는 장비 측정에 오류가 생긴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체크해봤는데 이상이 없었고 우리가 그 동작을 반복하자 마찬가지의 반응이 나왔다." 그 이후로 십 년 동안 연구가 진행되면서 영장류, 몇몇 새 그리고 인간에게서 거울 뉴런의 존재가 확인되었다. 거울 뉴런은 행동을 수행할 때와 다른 사람이 그 행동을 수행하는 것을 관찰할 때 모두 발화되는 뉴런이다.

  거울 뉴런의 목적은 유기체로 하여금 전에 해보지 않았던 동작을 훈련시키고 준비시키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는 말하기와 말하기 학습에 밀접하게 관련되는 뇌 부위인 브로카 영역에서 거울 뉴런을 발견했다. 거울 뉴런은 유아들이 어떻게 부모가 짓는 표정을 흉내낼까 하는 오래된 수수께끼를 풀어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음악적 리듬이 우리를 신체적으로 움직이게 하고 정서적으로 감동을 주는 이유도 설명해 줄 것이다. 아직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몇몇 신경과학자들은 음악가가 연주하는 것을 보거나 들을 때 우리의 거울 뉴런이 발화하는 것은 이런 소리를 어떻게 만드는지 뇌가 알아내기 위함이라고 추정한다. 그래야 나중에 신호 체계의 일부로서 다시 반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음악가들은 어떤 음악 부분을 한 번만 듣고도 자신의 악기로 그대로 다시 연주할 수 있다. 거울 뉴런이 이런 능력에 관여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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