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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혜지 저

     독일 뮌헨의 문화재 건물 전문가인 임혜지가 들려주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 딛고 서 있는 땅과 머리 위의 하늘, 공간과 공간을 이어주는 솟을대문, 작은 발코니와 편리한 부엌, 조용한 기도실과 1만 년 전 인류의 조상들이 살았던 움집터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우리 모두 생활 속에서 함꼐 하는 건축 이야기를 한 권의 책에 담았다. 자칫 딲딲해지기 쉬운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쉽고 따뜻하게 풀어내었다. 이 책은 총 3장으로 구성되었다. 집 이야기, 도시 이야기, 현장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특히 '도시 이야기'에서는 그녀의 가슴을 뛰게 했던 ...

독일어에만 있는 단어가 하나 있다. '게뮈틀리히' gemütlich라고, 편안하고 아늑한 공간의 훈훈한 기분을 묘사하는 단어인데, 다른 나라 말로는 한 마디로 번역할 수가 없다고 한다. 검소하소 실용적으로 꾸며놓은 모니카네 집은 그야말로 '게뮈틀리히'하다.


 

소장은 나를 한동한 가만히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전문잡지에 실리는 작품들을 설계하는 건축가만 성공한 건축가는 아니라고 말했다. 남의 목욕탕을 개조하는 일을 하더라도 적당한 비용으로, 사용하기 편리한 배치와 세련된 디테일을 제공하는 서비스업도 건축가라는 직업에 속하는 일이며, 집주인이 두고두고 기분 좋게 산다면 이것이 바로 건축가의 능력이자 보람이라고 했다.

나의 눈이 열리는 순간, 깨달음과 만나는 순간이었다. 이날 들었던 소장의 직업관은 나의 인생에 두고두고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비단 건축가라는 직업 하나에 국한되는 말이 아니라, 무엇을 가치 있게 여길 것인가를 선택해야할 때마다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책임자에게 실측의 기본선인 그 빨간 줄은 양보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그럼 집앞의 보도에 친 줄이라도 걷어줄 것을 요청했다. 나는 공공장소인 보도는 집주인의 소관이 아니므로 이 책임자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사람이 지금 나와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되도록 빠른 시일 내에 제거하겠다.'고 선선히 약속했다. 감정이 앞서는 힘겨루기를 하면 져도 손해고 이겨도 손해일 때가 많다. 비기는 것이 유일한 길이다. 그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중앙스위치를 내리면 어차피 꺼질 라디오도 앞으로는 꼭 따로 끄도록 주위하겠다고 했다.


 

철거 현장에서의 조사는 고전주의 주택의 연구에 결정적인 성과를 가져왔다. 연구 결과가 책으로 출간되자 긍정적인 평가가 제법 언론을 탔다. 건축사 학계의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건축 전문잡지에 기고한 서평은 다음과 같은 말로 끝을 맺었다. "저자는 결정적인 순간을 포착하여 철거 주택 세 채의 해부를 감행한 후 세심하게 기록으로 남김으로써 칼루스에 문화재청이 앞으로 문화재를 지키는 데 필요한, 상상을 초월하는 도구를 손에 쥐어준 셈이다." 나는 가슴이 뜨거워져서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 서평을 쓴 사람은 나를 왕따한 후배였다.


나만의 공간, 나 하나의 개인으로서의 공간, 내가 타인과 관계를 맺는 공간, 나를 한껏 안아주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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