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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s/讀書_Scrap

자전거 여행

x-agapao™ 2011. 12. 11. 00:36

    김훈 저/이강빈 사진

     자전거가 저 앞에 한 대 있다. 바퀴에 굴러온 길의 온기가 아직 남아 있는. 떠나온 곳과 앞으로 발들이게 될 곳의 중간에서 그 자전거의 주인이 그 지나온 길들에 대한 이야기를 숨이라도 돌릴 듯 들려준다. 소음과 완벽하게 차단된 오직 바람을 가르는 숨소리를 동무 삼아 달리는 자전거 타기. 여행은 굳이 공간적 거리의 이동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저자의 처연하고 시구같은 문장들이 자전거 바퀴살에 걸려든 햇살처럼 반짝인다. 그래서 아름다운 여행과 아름다운 각성과 아름다운 글이 어우러져 저 앞에 서 있는 자전거 폐달에 발을 딛고 싶게...

 2년만에 가까스로 다녀온 해외 휴가에 함께한 책, 해외에서 우리나라를 같이 여행한 느낌이었다. 굵직 굵직한 어휘가 읽기를 느리게 만들지만 더 깊이 되새겨 볼 수 있게해 준 이야기들.

 라인홀트 메스너는 유럽 알피니즘의 거장이다. 그는 히말라야에 몸을 갈아서 없는 길을 헤치고 나갔다. 그는 늘 혼자서 갔다. 낭가파르바트의 8,000미터의 연봉들을 그는 대원 없이 혼자서 넘어왔다. 홀로 떠나기 전날 밤, 그는 호텔 방에서 장비를 점검하면서 울었다. 그는 무서워서 울었다. 그의 두려움은 추락이나 실종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이기 때문에 짊어져야 하는 외로움이었다. 그 외로움에 슬픔이 섞여 있는 한 그는 산속 어디에선가 죽을 것이었다. 길은 어디에도 없다. 앞쪽으로는 진로가 없고 뒤쪽으로는 퇴로가 없다. 길은 다만 밀고 나가는 그 순간에만 있을 뿐이다. 그는 산으로 가는 단독자의 내면을 완성한다. 그는 외로움에서 슬픔을 제거한다. 그는 자신의 내면에 외로움의 크고 어두운 산맥을 키워나가는 힘으로 히말라야를 혼자서 넘어가고 낭가파르바트 북벽의 일몰을 혼자서 바라본다. 그는 자신과 싸워서 이겨낸 만큼만 나아갈 수 있었고, 이길 수 없을 때는 울면서 철수했다.

 스패너 뭉치와 드라이버 세트와 공기 펌프와 고무풀은 얼마나 사랑스런 원수덩어리인가. 몸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을 진대, 장비가 있어야만 몸을 사릴 수 있고, 장비가 없어야만 몸이 나아갈 수 있다. 출발전에 장비를 하나씩 점검해서 배낭에서 빼 버릴 때, 몸이 느끼는 두려움은 정직하다. 배낭이 무거워야 할 수 있지만, 배낭이 가벼워야 갈 수 있다. 그러니 이 무거움과 가벼움은 결국 같은 것인가. 같은 것이 왜 반대인가. 출발 전에 장비를 하나씩 빼 버릴 때 삶은 혼자서 조용히 웃을 수밖에 없는 비애이며 모순이다. 몸이 그 가벼움과 무거움, 두려움과 기쁨을 함께 짊어지고 바퀴를 굴려 오르막을 오른다.
 빛 속으로 들어가면 빛은 더 먼곳으로 물러가는 것이어서 빛 속에선 빛을 만질 수 없었고 태백산맥의 가을빛은 다만 먼 그리움으로서만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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